온톨로지 1편 — 분명히 있는데, 검색하면 안 나와요

밤에 침대에 걸터앉아 당근마켓을 뒤져본 적이 있어요. 이사하면서 믹서기를 하나 장만하려던 참이었는데 한참을 내려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요. 다음 날 우연히 알았어요. 우리 동네에 거의 새것인 물건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는 걸요. 제목이 “블렌더”였어요.

저는 “믹서기”라고 검색했고, 파는 분은 “블렌더”라고 적었어요. 둘 다 같은 물건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색창은 우리를 이어주지 못했어요. 물건은 있었어요. 다만 서로 다른 이름 뒤에 숨어 있었을 뿐이에요.

결국 며칠 뒤에 새것을 샀어요. 그 글은 그사이 팔렸더라고요. 손해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일인데 이상하게 며칠 마음에 남았어요. 분명히 거기 있었는데 저한테만 없었으니까요.

밤의 방, 폰 불빛에 기대 앉은 사람 — 양옆에 같은 믹서기가 각각 떠 있고 둘을 잇는 점선이 중간에서 끊겨 있다

사진첩에서도 비슷한 걸 겪어요. “작년 제주도에서 아버지랑 찍은 사진 어디 있지?” 하고 찾기 시작하면 결국 엄지손가락으로 몇천 장을 거슬러 올라가게 돼요. 그 사진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찍은 것인지 저는 다 알아요. 그런데 사진첩은 몰라요. 제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사진첩 안에는 적혀 있지 않으니까요. 결국 찾는 방법은 하나예요. 그해 여름쯤이었지, 하면서 날짜를 짐작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기억을 검색어 대신 쓰는 셈이에요.

연락처는 좀 더 얄궂어요. 몇 해 전에 저장한 이름이 “김부장”이었어요. 그분 성함은 김민수예요. 지금은 부장도 아니고, 회사도 옮기셨어요. 어느 날 “민수”라고 검색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번호는 제 폰 안에 그대로 있었는데도요. 제가 붙인 이름과 그분의 이름이 달랐던 거예요.

저장하던 그날의 저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때는 그분이 김부장이 맞았으니까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에는 늘 그게 제일 자연스러운 이름이에요. 어긋나는 건 나중이에요.

회사에서도 같은 일을 봐요. 잃는 게 좀 더 클 뿐이에요. 팀마다 같은 프로젝트를 다르게 불러요. 어떤 팀은 줄임말로, 어떤 팀은 정식 명칭으로, 보고서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요. 오래 다닌 사람은 셋이 같은 것임을 알아요. 새로 온 동료는 몰라요. 검색해도 절반만 나와요.

그래서 회의 때 이런 장면이 나와요. 한 사람이 자료를 찾다가 “그거 없는데요” 하고, 다른 사람이 “아, 그건 다른 이름으로 올라가 있어요” 하고 대신 찾아줘요. 찾아준 사람은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요. 아무 데서도 안 배웠어요. 몇 년 다니면서 몸으로 익힌 거예요. 그 한 마디가 없었으면 자료는 그냥 없는 것이 됐을 거예요. 새로 온 동료가 그 요령을 익히기 전까지 회사가 가진 것의 절반은 잠겨 있어요.

물건도, 사진도, 번호도, 프로젝트도 전부 있었어요. 없어서 못 찾은 게 아니에요. 제가 아는 것을 아무도 적어두지 않았을 뿐이에요. 믹서기와 블렌더가 같다는 건 제 머릿속에만 있었어요. 사진의 사연도, 김부장이 김민수라는 사실도, 프로젝트 이름 세 개가 하나라는 것도요. 컴퓨터는 글자만 봐요. 글자 뒤에 있는 “같은 것”은 사람 머릿속에만 살아요.

이렇게 알고는 있는데 밖에 적히지 않은 지식을, 오래 연구한 사람들은 암묵지라고 불러요. 새로 기억하실 단어는 몇 개 안 돼요. 그 첫 번째가 이거예요.

암묵지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면 이렇게 바꿔도 돼요.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아는 것. 문제는 컴퓨터가 그 “우리” 안에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6개월 뒤에 합류할 동료도, 3년 뒤의 나도 그 안에 없어요. 어젯밤의 저는 믹서기와 블렌더가 같다는 걸 알았지만, 그 앎은 검색창까지 가지 못했어요.

예전에는 이 틈이 그럭저럭 견딜 만했어요. 아쉬우면 옆자리에 물어보면 됐으니까요. 요즘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우리가 검색창 대신 AI에게 묻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AI는 옆자리 선배처럼 눈치로 알아채지 못해요. 적힌 것만 봐요. 적히지 않은 것은, 이제 정말로 없는 것이 돼요.

그럼 어떻게 적어두면 되느냐. 방법은 이미 나와 있어요. 아주 오래됐어요. 여러분도 하나쯤 써보셨을 거예요. 명절마다 봤던 그 그림이요.

다음 편에서 꺼내볼게요.

이것 저것 AI와 사는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목요일마다 보내드리고, 그 사이에 나눌 이야기가 생기면 한 번 더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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