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화면은 왜 다 비슷할까요 — 취향을 코드로 적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거예요
AI로 웹 화면을 만들어본 분이라면 아마 같은 경험을 하셨을 거예요. 처음엔 놀라워요. 말 몇 줄로 그럴듯한 화면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몇 개 만들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들어요. 보라색 그라데이션, 둥근 카드, 가운데 정렬된 큼직한 제목. 어디서 본 화면이에요. 정확히는, 모두가 만들고 있는 화면이요.
요즘은 이걸 부르는 말도 생겼어요. AI 슬롭(slop). 뭉텅이로 쏟아지는, 나쁘진 않지만 아무것도 아닌 결과물들이요.
문제는 모델이 아니라 주문서
한동안 저는 이게 모델의 한계라고 생각했어요. 더 좋은 모델이 나오면 해결될 문제라고요. 그런데 직접 부딪혀보니 조금 다른 결론에 도착했어요.
모델은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평균적인 취향을 갖고 있어요. 비유예요. 모델이 정말 취향을 가진다기보다, 별다른 제약이 없으면 학습 데이터에서 자주 본 안전한 조합을 고르기 쉽다는 뜻이에요. "예쁘게 만들어줘"라고 주문하면 평균적으로 예쁜 것, 즉 어디서 본 그 화면이 나와요. 주문서가 비어 있으면 흔한 패턴이 그 자리를 채워요. 당연한 일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이 바뀌어야 했어요. "어떻게 하면 AI가 더 예쁘게 만들까"가 아니라, "내 취향은 문서로 적혀 있는가"로요.
취향을 파일 하나에 모았어요
그래서 해본 일이 있어요. 색, 글꼴, 간격, 모서리 곡률 같은 디자인 결정을 전부 파일 하나에 적었어요. 디자인 토큰이라고 부르는 방식이에요. 주색은 무엇이고, 제목 글꼴은 무엇이고, 간격은 어떤 배수로만 뛰는지. 말하자면 취향의 정본을 만든 거예요.
그리고 규칙을 하나 세웠어요. 화면은 이 파일에서만 파생된다. AI에게 화면을 시킬 때 이 파일을 먼저 읽게 하고, 여기 없는 색이나 글꼴은 쓰지 못하게 해요. 색이나 간격처럼 전역에 걸리는 불만이 생기면 화면이 아니라 토큰 파일을 고쳐요. 그러면 다음 화면부터는 고친 취향이 반영돼요. 물론 토큰이 전부를 정하진 못해요. 레이아웃이나 정보의 위계 같은 건 화면마다 따로 봐야 했어요. 그래도 바탕이 흔들리지 않는 것만으로 절반은 잡히더라고요.
효과는 두 단계로 왔어요. 첫째, 화면들이 서로 닮기 시작했어요. 남의 평균이 아니라 제 취향끼리요. 둘째, 이게 더 중요한데, 피드백이 쌓이는 자리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이 화면 별로네"라는 감상이 그 화면과 함께 버려졌어요. 지금은 그 감상이 토큰 파일의 수정 한 줄로 남아요. 취향이 휘발되지 않고 축적되는 거예요.
슬롭의 반대말
이 경험 뒤로 저는 슬롭에서 벗어나는 첫 조건이 "더 높은 품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첫 조건은 일관성이에요. 한 장짜리 결과물이 아무리 좋아도, 열 장이 제각각이면 그건 아직 내 것이 아니에요. 열 장이 하나의 취향으로 묶일 때 비로소 "내 것"이 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일관성은 모델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문서로 줘야 하는 것이었어요. 취향은 머릿속에 있으면 매번 새로 설명해야 하는 짐이지만, 파일로 적히면 모든 결과물에 자동으로 스며드는 자산이 돼요. AI 시대에 심미안이 더 중요해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절반만 동의해요. 심미안은 적혀야 힘이 돼요.
이것 저것 AI와 사는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목요일마다 보내드리고, 그 사이에 나눌 이야기가 생기면 한 번 더 찾아뵐게요.
